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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서울시향 오스모 벤스케의 시벨리우스 교향곡 3번

공연일정
20201120 금요일 20:00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
Osmo Vanska, Conductor
협연자
피아노, 임주희
Ju-Hee Lim, Piano
가격
R 70,000 S 50,000 A 30,000 B 20,000 C 10,000

※ 공연 당일 티켓은 각 공연장 콜센터와 현장 매표소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관련 문의
- 예술의전당 02-580-1300(09:00~20:00)
- 롯데콘서트홀 1544-7744(평일 10:30 ~ 19:00, 주말,공휴일 휴무)
- 세종문화회관 02-399-1000(09:00~20:00)
※ 본 연주회의 일정과 장소 출연진과 곡목 등은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 예매 또는 취소와 관련해서는 "예매안내" 메뉴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공연중 휴대전화 전원은 꼭 꺼주시기 바랍니다. Please make sure that your mobile phone is swiched off.
※ 악장 사이의 박수는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Please do not applaud between the movements.

2020 서울시향 오스모 벤스케의 시벨리우스 교향곡 3

CLASSICAL SYMPHONIES: Prokofiev's 1st and Sibelius’ 3rd

 

2020112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Friday, 20 November , 2020 8PM, Concert Hall, Seoul Arts Center

 

지휘 오스모 벤스케 Osmo Vänskä, conductor

피아노 임주희 Ju-Hee Lim, piano

 

프로그램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제1‘고전적

Prokofiev, Symphony No. 1, Op. 25 ‘Classical’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협주곡 제2

Shostakovich, Piano Concerto No. 2 in F major, Op. 102

---------- 휴식 15분 -------------

 

시벨리우스, 교향곡 제3

Sibelius, Symphony No. 3 in C major, Op. 52

  
총 소요 시간: 약 90분(휴식 포함)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1891-1953), 교향곡 제1번 ‘고전적’(1916~17)
 만일 고전파 시대의 거장인 하이든이 20세기 초에 살았더라면 어떤 교향곡을 작곡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이라고까지 하기는 그렇지만, 꽤 설득력 있는 답안 가운데 하나로 프로코피예프의 첫 번째 교향곡을 제시할 수 있을 듯싶다.
 프로코피예프가 1916년에서 1917년 사이에 작곡한 ‘교향곡 제1번’은 일명 ‘고전적 교향곡’으로 일컬어진다. 그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시절에 연구한 하이든의 기법을 바탕으로 ‘하이든이 현대에 생존하고 있다면 작곡했을 법한 작품’을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곡은 고전파 교향곡의 모방작 내지 패러디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동시에 화성과 리듬에서 20세기 작곡가다운 수법이 충분히 드러나 있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곡을 두고 ‘현대인이 살고 있는 오래된 마을’이라 평하기도 했다.
 제1악장(빠르게)은 소나타 형식에 의한 알레그로 악장으로, 두 개의 주제가 등장하여 프로코피예프 특유의 재기 넘치는 표정 속에 활기차고 흥미진진한 흐름을 이어간다. 제2악장(약간 느리게)은 몽환적인 라르게토 악장으로, 두 개의 악상을 주체로 강약을 대조시키는 수법이 두드러진다. 제3악장(너무 빠르지 않게)에서는 고전파 교향곡의 ‘미뉴에트’ 대신에 모음곡에서 유래한 ‘가보트’가 등장한다. 하이든을 연상시키는 유머와 위트로 가득한 경쾌한 악장이다. 제4악장(매우 빠르게)은 다시 소나타 형식이다. 비바체 템포의 박진감 넘치는 음악이 전곡을 시원스럽게 마무리 짓는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 피아노 협주곡 제2번(1957)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월트디즈니의 애니메이션 ‘판타지아’를 떠올리게 된다. 다만 여기서는 1940년의 오리지널 버전이 아니라 60년 뒤에 나온 속편이다. ‘판타지아 2000’을 보면 안데르센의 동화 『장난감 병정』을 해피엔딩으로 각색한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그 배경음악으로 바로 이 곡(제1악장)이 사용되었다. 외다리 장난감 병정과 발레리나 인형의 사랑, 심술꾸러기 광대 인형의 훼방, 창밖 개천으로 떨어진 장난감 병정의 모험과 귀환으로 이어지는 아기자기하고 흥미진진한 스토리라인이 쇼스타코비치의 음악과 너무나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대개 아이들을 겨냥한 것처럼, 쇼스타코비치도 자기 아들을 위해서 이 곡을 썼다. 당시 그의 아들 막심은 모스크바 음악원 학생이었는데, 작곡을 전공하면서 피아노 연주 실력이 뛰어났고 나중에는 지휘자로도 성공했다. 그 무렵 쇼스타코비치는 ‘1905년 혁명’을 주제로 한 장대하고 비극적인 대작 ‘교향곡 제11번’을 작곡 중이었다고 하는데, 아마 머리도 식히고 기분전환도 할 겸 무척이나 경쾌하고 간결한 이 곡을 쓰지 않았을까.
- 제1악장(빠르게) / 제2악장(걷는 속도로) / 제3악장(빠르게)
 이 유쾌하고 흥미진진한 협주곡은 세 개 악장이 비슷한 길이로 작곡되었는데, 그 안의 악상들은 마치 성장기 아이들이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경험과 감정들을 때로는 유치하고 장난스럽게, 때로는 진지하고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그 이면에는 어느덧 장성한 아들을 대견하게 바라보던 쇼스타코비치의 추억과 상념, 애정이 자리하고 있지 않았을까.

잔 시벨리우스(1865-1957), 교향곡 제3번(1906~7)
 1907년 늦가을, 잔 시벨리우스는 러시아 투어 중 헬싱키를 방문한 오스트리아의 지휘자 겸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를 만났다. 서로 호감 어린 대화를 이어가던 두 거장의 화제는 자연히 교향곡으로 옮겨 갔는데, 그 본질을 논하는 대목에서 견해가 확연히 갈렸다. 말러가 “교향곡은 세계와 같으며 모든 것을 아울러야” 한다고 주장한 데 비해, 시벨리우스는 “교향곡의 양식과 형식적 엄격성, 모든 모티브 간의 내적 연관을 생성하는 심오한 논리를 존중”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던 것이다.
 그 무렵 시벨리우스는 1904년에 착수했던 세 번째 교향곡을 막 발표한 참이었다. 교향곡 제3번은 1907년 9월 25일 헬싱키에서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는데, 공연을 지켜본 핀란드 청중들은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박수갈채는 의례적 예우의 수준에 그쳤고, 비평가들 역시 직접적 비판은 삼가면서도 작품이 ‘기대와 달랐다’며 혼란스러운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의 ‘국민 작곡가’가 이전의 두 교향곡처럼 장대하고 낭만적이며 (적어도 그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애국적인 교향곡으로 다시 한 번 힘찬 고무와 뜨거았고 그다지 낭만적이지도 않았으며, 애국적인 작품은 더더욱 아닌 것처럼 보였다. 러시아의
압제에 대한 핀란드 민중의 저항은 아직 한창이었건만 시벨리우스의 시선은 어디로 향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 교향곡이 작곡되던 시기는 시벨리우스의 창작 여정에서 일종의 과도기이자 전환기였다. 당시 1903년에 완성하고 1905년에 개정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통해서 낭만적 교향악 스타일의 정점에 도달했던 그의 앞에는 교향곡 창작에 있어서 새로운 노선의 정립이라는 과제가 놓여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같은 시기 외부 의뢰에 응하여 작곡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1905), ‘벨샤자르의 향연’(1906)과 같은 작품들에서는 종래의 낭만적 작풍에 기대면서도, 교향곡 제3번에서만큼은 새로운 길을 집요하고 치열하게 모색했다. 그리고 그렇게 도출해 낸 방법론은 다분히 고전주의 지향적이었다. 일단 관현악 편성이 고전주의 시대 후기 또는 낭만
주의 시대 초기의 그것에 가깝게 축소되었고, 투티(총주)의 빈도나 두꺼운 텍스처로 진행되는 부분도 줄어들었으며, 연주 시간도 30분 정도로 단축되었다. 악상 전개와 형식의 측면에서도 고전적인 간명함과 투명성이 두드러진다. 긴 호흡의 열띤 칸틸레나(서정적 선율)나 선율들이 중첩된 패시지가 감소한 대신 짤막한 모티브적 악구들과 그 발전이 주류를 이루고, 마지막 악장에 스케르초와 피날레를 융합한 형태의 3악장 구조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연상시킨다. 다만 이 곡의 피날레가 ‘운명 교향곡’의 그것처럼 박진감 넘치거나 웅변적이지는 않다.
 한편, 이 곡에서 시벨리우스가 선보인 새로운 스타일은 착수 시점에 그의 신상에 일어났던 환경의 변화와도 관련이 깊다. 1904년 가을, 그는 가족과 함께 헬싱키 북쪽 근교의 예르벤퍼로 이주한다. 유명 건축가에게 의뢰하여 투술라 호수에서 가까운 야트막한 언덕 위에 지어진새 보금자리는 아내(아이노 예르네펠트)의 이름을 따서 ‘아이놀라’Ainola라고 불렀다. 예르벤퍼에서의 새로운 생활은 그의 삶에 여러 모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헬싱키에서 지나치게 탐닉했던 외식과 음주, 무분별한 사교생활, 그로 인한 낭비와 재정난, 건강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한동안 껄끄러웠던 아내와의 관계도 회복되었고, 지역 공동체에 속한 예술가, 작가, 문화인들과 교류하면서 보다 친밀하고 절도 있는 관계를 추구했으며, 덕분에 창작에 매진할 시간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가 경험한 안정감과 행복감, 내적 자아에 대한 응시, 절제와 내실이 새 교향곡에 투영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교향곡 제3번을 통해서 시벨리우스는 다분히 고전주의적인 형식과 작법으로 간결화, 내면화, 추상화를 지향하는 독자적 스타일을 개척했다. 이 작품 이후 그의 교향곡들은 기본적으로 순음악적이고 추상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간주되지만, 한편으로는 그 이면에 자리한 영혼의 목소리와 그것이 환기하는 이야기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특히 이 교향곡의 경우, 1905년 여름에 진행됐던 미완의 <마르야타Marjatta> 프로젝트와의 연관성도 참고할 만하다. ‘칼레발라’(시벨리우스가 평생 화두로 삼은 핀란드 민족의 전승 서사시) 속 마지막 에피소드에 기초하여 얄마리 핀네가 대본을 마련한 오라토리오 <마르야타>는 핀란드판 그리스도 탄생 설화라고 할 수 있는데, 1부 ‘예수의 탄생’, 2부 ‘예수의 매장’, 3부 ‘예수의 부활’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비록 이 오라토리오는 중도에 폐기되었지만, 그 아이디어와 음악적 소재들은 교향시 ‘포욜라의 딸’(1906)과 이 교향곡 제3번에 녹아들었다. 다만 아래 악장별 설명에서 <마르야타>와 관련된 언급은 어디까지나 비유적인 견지에서 고려되어야 하겠다.
 제1악장(적당한 빠르기로): 소나타 형식. 다소 투박하고 리드미컬한 제1주제(C장조)로 씩씩하고 쾌적하게 출발하여 힘차게 고조되고, 얼마 후 첼로에서 부드럽지만 우수를 머금은 듯한 제2주제(B단조)가 나타나 대비를 이룬다. 두 주제는 발전부에서 다채롭게 변형되는데, 그에 앞서 느리고 조용한 이행부를 지난다. 플루트 솔로가 인상적인 이 이행부는 산딸기를 따먹고 임신하게 되는 동정녀 마르야타의 순수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발전부에서 복잡하고 긴박하게 뒤얽히던 흐름은 재현부로 진입하는 순간 제1주제가 터져 나오며 정점에 도달하고, 현의 피치카토에 이어 나타나는 종결부에서는 한결 느긋해진 템포 속에서 찬가풍의 선율이 마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듯이 감격스럽게 울려 퍼지다가 평화롭게 마무리된다.
 제2악장(움직이면서 느긋하게, 거의 알레그레토처럼): 명상적인 완서악장. 은근한 그림자가 드리운 온화한 흐름 위에서 반복되는 단편적 선율들과 정감 어린 표정들이 듣는 이의 가슴 깊은 곳을 적셔온다. 중간의 삽입부에서 나타나는, 비애 어린 코랄풍 선율은 ‘마르야타’에서 가져온 것. 잠든 사이 실종된 아기를 찾아 헤매는 그녀의 탄식이 담긴 듯하다.
 제3악장(보통 빠르기로): 활기차고 역동적인 스케르초와 장중한 피날레가 결합된 악장. 여러 개의 모티브와 음형들이 얽히고설킨 덤불처럼 복잡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케르초가 후반부로 접어들 즈음 핀란드에서 잘 알려진 찬송가 선율이 호른에서 떠오르고, 그 이미지는 피날레로 넘어가면 비올라에서 제시되는 코랄풍 주제(‘신을 향한 기도’)의 꾸준하고 의연한 전진을 통해서 선명해진다. 마지막에는 C장조 으뜸화음을 구성하는 음들이 순차로 하강하는 단순하지만 확신에 찬 모습으로 당당하게 마친다.

글 황장원